정지연이 만난 사람 – 150.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
“한 번쯤 괜찮아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It’s okay to fail once”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
서비스업으로 아시아 여성과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지원해온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가 그들의 14년을 돌아보는 책을 펴냈다. 책 《한 번쯤 괜찮아, 사회혁신가》에는 사회적기업이란 용어도 생소하던 시절에 패기로만 시작했던 좌충우돌 창업을 넘어, 이제는 그를 사회혁신가로 단단하게 성장시킨 수많은 실패와 실험을 거쳐 발견한 통찰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대환장”이라 불렀던 그 10년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그를 만났다.
사진 I 신병곤
“새로 만난 투자자가 임팩트가 작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정말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사람을, 동료를 성장시키고 키워 왔더라고요. 대기업도 사람을 키우기 어려운 시대, 그건 굉장한 거 아닌가요.”
서울, 태국, 네팔, 강원도 영월과 제주를 종횡무진 오가며 아시아 여성과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위해 외식 서비스업을 운영해온 이지혜 대표는 오요리의 가장 큰 임팩트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이가 네팔 카트만두에서 카페 미띠니(네팔의 여성과 청소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카페)를 운영하는 여성 다와다. 10년 전인 2013년 네팔에서 오요리아시아의 직업교육을 받은 후 바리스타이자 대표가 된 그는 현재 카페 미티니 4호점을 준비하며 올해 800명을 바리스타로 배출했다. 다와 외에도 요리를 통해 탈학교 청년들, 취약계층 청년들의 직업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하며 3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 선정에 빛나는 떼레노의 주방을 책임지는 신승환 셰프를 비롯해 이대표가 엑셀러레이터로 참여한 청년 창업가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옆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은 험준했다. 공동창업했던 회사를 정리하며 직원들 퇴직금을 주기 위해 7년간 들어온 생명보험을 해지해야 했고, 태국에서는 큰돈을 들여 리노베이션한 레스토랑을 건물주의 갑질로 쫓겨나야 했다. 심지어 창업 초기에는 장기인턴십을 하던 청소년에게 노동법 위반으로 고발당해 650만원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사회적기업으로서 교육 훈련과 학습, 노동이 혼재된 사업모델과 법을 잘 몰랐던 무지가 겹쳐 생긴 악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요리아시아는 14년 동안 수많은 시도와 노력을 통해 다양한 성과를 냈다.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는 최초로 미쉐린 원스타를 받았고 비콥(B corp) 인증에 이어 2년 연속 글로벌 상위 5%에 속한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이런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제4회 전준한사회적경제 대상도 수상했다.
반갑습니다. 2009년 홍대앞에 다국적 레스토랑 오요리를 열었던 게 어제 일 같은데요.
홍대 오요리는 국내 이주여성들에게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그들의 자립을 돕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주여성들과 함께 식당을 내고 창업을 해도 문제는 계속 발생했어요. 남편에게 월급을 숨기고, 본국에 더 많은 도움을 줘야 하고, 여전히 가난하고요. 문제의 본질이 뭘까 살펴봤죠. 이주여성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사업으로는 이들의 불안한 삶을 바꿀 수 없는 거였어요. 문제는 아시아 여성들이 겪는 가난에 있었으니까. 한국에 오지 않고도 자신의 나라에서, 아시아 곳곳에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게 한다면 국내 이주여성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겠구나 깨달았죠.지금 돌이켜보면, 창업 전에 이런 본질에 대해 질문했어야 했는데 순서가 바뀌었던 거에요. 참 대책 없었어요.
그후 오요리아시아를 열고 네팔과 태국에서, 파인 다이닝 떼레노에서 그리고 강원과 제주를 오가며 로컬 비즈니스를 하는 등 14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계속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해온 것 같아요. 스스로가 지루한 걸 싫어하기도 하고요. 때론 무모할 때도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계속 이 일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을 잊지 않았고, 또 실패할 수 있는 도전이라도 기꺼이 함께해줄 동료, 파트너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특히 네팔과 태국 치앙마이로 진출하여 여행자 카페를 운영하고, 현지인들과 함께 비스트로를 운영했던 경험은 지금 돌이켜봐도 큰 자산이 되었죠.
지난 10년을 돌이켜봤을 때 사회적기업가로서 스스로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되던 때는 언제였나요?
2014년 북촌 한옥마을에 스페인 레스토랑 떼레노를 신승환 셰프와 준비하던 때죠. 투자자들을 만나서 미팅을 하는데, 소셜 비즈니스를 한다던 내가 10만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먹고 만드는 일을 하는 게 맞느냐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때 신셰프가 물었어요. “대표님, 15,000원짜리 밥을 팔아 언제 이 사람들 월급을 높여줄 수 있나요?”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해준 거죠. 오요리를 거쳐간 사람에게 밥집에서 일한 경험과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 중 무엇을 줘야 할지 택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진짜 상권에서 제대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을 했죠.
파인 다이닝 떼레노는 2020년부터 3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됐어요.
미쉐린 가이드 서울 얘길 듣고 제가 먼저 직원들을 불러 우리도 준비해보자고 했어요. 다들 당황했죠. 그렇지만 전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미쉐린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전 미쉐린이 5스타인 줄 알던 사람인데요. 그러나 미쉐린에 선정된다면, 그 자체로 우리의 일의 가치가 보여질 거란 걸 알았어요.
미쉐린 원스타뿐만 아니라 2019년 비콥(B Corp) 인증을 받았고, 2021년, 2022년에는 커뮤니티 부분에서 비콥 인증 기업들 가운데 가장 큰 임팩트를 만들어낸 상위 5%에 선정되었어요.
이익 창출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공익성과 사회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기업만 비콥 인증(우리에게 잘 알려진 친환경기업 파타고니아가 대표적 비콥 인증기업이다-편집자주)을 받을 수 있어요. 항목 심사도 까다롭고 증빙과 리뷰도 준비할 게 정말 많아요. 특히 글로벌 상위 5% 안에 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거기서 저희는 50인 미만 회사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로 5%에 들었어요.
제가 비콥 인증을 준비할 때 주변에서 그랬어요. 한국에서 노동부 인정 사회적기업이면 된 거 아니냐고. 전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런 국제적 기준에서 우리가 상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에 오요리아시아 구성원 모두가 크나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죠. 이런 국제적 인증이 중요한 건, 우리가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해왔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 긴 설명이 필요 없다는 거죠. 비콥 인증 상위 5%, 이 한마디로 충분해요.
미쉐린도, 비콥도 오요리아시아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노력이었군요.
몇 해 전만 해도 사회적기업 관련한 자리에 가면 여전히 인증, 지원금, 일자리 이런 얘기들만 했어요. 전 그런 프레임을 바꾸고 싶었어요. 국제인증을 한 번 준비하려면 공부하고 준비할 게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이런 높은 기준을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오요리아시아는 시작 단계부터 꾸준히 임팩트 투자(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곳에 투자해 보다 지속가능하고 건전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를 받아온 것으로 알아요.
2011년 처음 전 세계 사회적기업의 투자자들과 사회혁신가들의 투자 마켓인 SOCAP(Social Capital Market)에 가본 이후 꾸준히 투자 공부를 하고 임팩트 투자자들도 만났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분들과 얘기할 때 서로 쓰는 언어가 달라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많이 극복한 상태예요. 오요리 때만 해도 비영리단체에 가까운 사회적기업을 했던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겠어요. 솔직히 사회적기업이라는 게 굉장히 모순적인 사업이거든요. 이익은 적고 가치는 많이 드러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를 하라고 해야 해요. 이윤이 되어야 할 돈을 왜 보육원 출신 청소년의 교육비로 써야 하는가에 대해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는 거고요. 그걸 이야기하려면 우리와 일해서 이 사람의 삶이 어떤 차원으로 변했는지 알아야 해요. 100만원 월급 받던 이가 300만원 월급을 받게 되었고, 어떤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수치적인 before-after를 보여주려면, 우리의 비즈니스가 확실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이제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진 것 같은데요.
임팩트 투자자들을 만나면 사회적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되게 달라요. 이제는 우리는 착하니까 도와줘, 이런 류의 얘기는 통하지 않아요. 우리가 멋진 일을 하니까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말해야 하죠. 사회적기업은 매력적이어야 해요. 제가 디자인이나 이런 걸 많이 신경 쓰는 이유가, 우리가 얼마나 더 매력적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일하는 건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회복지, 일자리, 장애인, 보육원… 이런 단어들을 들을 때 떠올리는 전형성이 있잖아요. 그걸 깨야 해요. 그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방식을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하게 하느냐, 그들의 삶의 변화를 얼마나 제대로 그려서 사업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매력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의 임팩트는 그런 거니까요.
2018년 강원도 영월군 석항트레인스테이 위탁 운영을 시작으로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제주 내 식당창업프로젝트 활동도 했는데요. 지역으로 향한 이유가 있을까요?
폐광마을에서 한 번 일해보고 싶었어요. 해외에서도 폐광지대는 지역의 큰 문제여서 많이들 소셜 비즈니스를 하고 있거든요. 석항역에 폐기차를 개조한 숙박시설을 론칭해 운영했고, 3년 동안 제주에서 ‘내 식당 만들기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 5기수, 25명의 청년 창업가들을 키웠고 전국에 이들의 외식업장이 15개나 생겨났어요. 지금은 양주시 상권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요.
지역에서 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지역에서 일하는 건, 처음 네팔에 진출했을 때를 떠올리게 해요. 현지의 언어를 이해하지 않고 나만의 언어를 쓰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 다른 문화권도 아니고, 같은 한국어를 쓰는 데도 말이죠. 현지 주민과의 대화는 늘 도돌이표이고, 때론 갑질도 하시죠(웃음). 그래도 계속 들어야 해요. 솔직히 지역이 가진, 몇십 년에 걸쳐 지역이 부딪혀온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는 여기에 ‘전문가’라고 와 있잖아요. 그러니까 힘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묻고 답해요. 답할 수 없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계속해서 묻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해요. 이런 걸 왜 해요, 왜 이렇게 해요, 사회적기업이 뭔데요. 이런 끊임없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는 태도가 중요하죠.
혹시 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작년 초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에는 사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버티는데 너무 이력이 난 사람이에요. 너무 어려웠던 걸 많이 버텨서 위기가 와도 까짓것 또 빚내서 어떻게든 버티자 이럴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어요. 그때가 우리 사업이 정말 잘되던 때였거든요. 떼레노에 이어 한남동에 오픈한 엘초코 떼레노도 대박이 났고. 드디어 이제는 빚을 갚을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겼는데 코로나 2년차가 되면서 정말 상황이 심각해지는 거예요. 이게 저희만의 문제라면 버텨보겠는데, 요식업 전체가 같이 무너지는 게 보이니까… 근데 이런 상황에서 돈 벌어 월급을 줘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고, 사회적 미션도 해야 해요. 처음으로 멘붕이 왔어요. 그래서 신규 투자 받으려던 것을 포기하고 회사의 미래와 미션을 생각하고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재정비에 들어갔죠. 사실, 그 전까지는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어요.
정말 사회적기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은데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했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면 어떨 때인가요?
좋은 어른을 만나봐야 스스로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딸이 스스로 자기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방학 때마다 제가 존경하고 자랑스러운 업계 분들과 만나게 하고 있는데요. 이런 기회를 딸에게 줄 수 있다는 것, 이게 엄마로서 사회적기업가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점 같아요. 지금 고3인 제 딸이 성장한 시대에는 저희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더 많아질 거란 기대 또한 있고요.
그럼 딸에게도 사회적기업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가요?
계속해서 딸애한테 직장 다니지 말고 사업하라고 꼬시고 있어요. “사업해봐 괜찮아, 망할 거 같으면 엄마가 빨리 빼줄게” 이러면서요(웃음). 기업가라는 것은 돈도 벌지만 책임도 져야 하고 사람도 키워야 하는 큰 도전이에요. 그리고 이런 도전을 감당해본 아이들의 삶은 분명히 다를테고요. 물론 창업을 누구에게나 다 권하는 건 아니에요. 자기만의 브랜딩을 갖고 싶다며 창업을 쉽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청년 창업 프로젝트에서 저희 엑셀러레이팅 실패율이 낮은데요. 그 이유가 될 친구들만 창업하라고 하고, 안 될 거 같은 친구는 끝까지 쫓아가서 말리기 때문이에요(웃음).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정말 해낼 수 있겠다고 각오가 되고 준비가 된 친구들이라면 한번쯤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다 실패도 하고 빚도 질 수 있겠지요. 그래서 책 제목도 이렇게 지었거든요.
정말로 한 번쯤 괜찮을까요, 사회혁신가로 사는 거?(웃음)
안 괜찮죠, 개고생인데…(웃음), 그런데 선배가 되어서 힘드니까 그만둬라 그러는건 쪽팔리잖아요. 그리고 솔직한 말로 진짜 괜찮아요. 왜냐하면 사회적 자본이 많은 게임이기 때문에 실패해도 남는 게 많거든요. 또 이제는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이미 만들어져 있어서 실패해도 선배들이 끌어안고 보듬어주게 판이 만들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사회혁신가. 실패해도 괜찮고요. 저야 너무 빨리 시작했던 게 문제였지만요(웃음).
《한 번쯤 괜찮아, 사회혁신가》사회적기업으로 창업한 지 14년. 아시아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온 오요리아시아 이지혜 대표의 창업 분투기.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 안에서 다양하게 도전하고 성취하고 실패해온 그의 지난 10년의 역사는 그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사회적 경제 동료들과 우리 사회의 역사임을 감동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텍스트CUBE, 14,400원)
정지연이 만난 사람 – 150.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
“한 번쯤 괜찮아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It’s okay to fail once”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
서비스업으로 아시아 여성과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지원해온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가 그들의 14년을 돌아보는 책을 펴냈다. 책 《한 번쯤 괜찮아, 사회혁신가》에는 사회적기업이란 용어도 생소하던 시절에 패기로만 시작했던 좌충우돌 창업을 넘어, 이제는 그를 사회혁신가로 단단하게 성장시킨 수많은 실패와 실험을 거쳐 발견한 통찰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대환장”이라 불렀던 그 10년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그를 만났다.
사진 I 신병곤
“새로 만난 투자자가 임팩트가 작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정말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사람을, 동료를 성장시키고 키워 왔더라고요. 대기업도 사람을 키우기 어려운 시대, 그건 굉장한 거 아닌가요.”
서울, 태국, 네팔, 강원도 영월과 제주를 종횡무진 오가며 아시아 여성과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위해 외식 서비스업을 운영해온 이지혜 대표는 오요리의 가장 큰 임팩트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이가 네팔 카트만두에서 카페 미띠니(네팔의 여성과 청소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카페)를 운영하는 여성 다와다. 10년 전인 2013년 네팔에서 오요리아시아의 직업교육을 받은 후 바리스타이자 대표가 된 그는 현재 카페 미티니 4호점을 준비하며 올해 800명을 바리스타로 배출했다. 다와 외에도 요리를 통해 탈학교 청년들, 취약계층 청년들의 직업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하며 3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 선정에 빛나는 떼레노의 주방을 책임지는 신승환 셰프를 비롯해 이대표가 엑셀러레이터로 참여한 청년 창업가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옆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은 험준했다. 공동창업했던 회사를 정리하며 직원들 퇴직금을 주기 위해 7년간 들어온 생명보험을 해지해야 했고, 태국에서는 큰돈을 들여 리노베이션한 레스토랑을 건물주의 갑질로 쫓겨나야 했다. 심지어 창업 초기에는 장기인턴십을 하던 청소년에게 노동법 위반으로 고발당해 650만원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사회적기업으로서 교육 훈련과 학습, 노동이 혼재된 사업모델과 법을 잘 몰랐던 무지가 겹쳐 생긴 악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요리아시아는 14년 동안 수많은 시도와 노력을 통해 다양한 성과를 냈다.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는 최초로 미쉐린 원스타를 받았고 비콥(B corp) 인증에 이어 2년 연속 글로벌 상위 5%에 속한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이런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제4회 전준한사회적경제 대상도 수상했다.
반갑습니다. 2009년 홍대앞에 다국적 레스토랑 오요리를 열었던 게 어제 일 같은데요.
홍대 오요리는 국내 이주여성들에게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그들의 자립을 돕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주여성들과 함께 식당을 내고 창업을 해도 문제는 계속 발생했어요. 남편에게 월급을 숨기고, 본국에 더 많은 도움을 줘야 하고, 여전히 가난하고요. 문제의 본질이 뭘까 살펴봤죠. 이주여성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사업으로는 이들의 불안한 삶을 바꿀 수 없는 거였어요. 문제는 아시아 여성들이 겪는 가난에 있었으니까. 한국에 오지 않고도 자신의 나라에서, 아시아 곳곳에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게 한다면 국내 이주여성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겠구나 깨달았죠.지금 돌이켜보면, 창업 전에 이런 본질에 대해 질문했어야 했는데 순서가 바뀌었던 거에요. 참 대책 없었어요.
그후 오요리아시아를 열고 네팔과 태국에서, 파인 다이닝 떼레노에서 그리고 강원과 제주를 오가며 로컬 비즈니스를 하는 등 14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계속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해온 것 같아요. 스스로가 지루한 걸 싫어하기도 하고요. 때론 무모할 때도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계속 이 일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을 잊지 않았고, 또 실패할 수 있는 도전이라도 기꺼이 함께해줄 동료, 파트너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특히 네팔과 태국 치앙마이로 진출하여 여행자 카페를 운영하고, 현지인들과 함께 비스트로를 운영했던 경험은 지금 돌이켜봐도 큰 자산이 되었죠.
지난 10년을 돌이켜봤을 때 사회적기업가로서 스스로의 터닝포인트였다고 생각되던 때는 언제였나요?
2014년 북촌 한옥마을에 스페인 레스토랑 떼레노를 신승환 셰프와 준비하던 때죠. 투자자들을 만나서 미팅을 하는데, 소셜 비즈니스를 한다던 내가 10만원이 넘는 스테이크를 먹고 만드는 일을 하는 게 맞느냐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때 신셰프가 물었어요. “대표님, 15,000원짜리 밥을 팔아 언제 이 사람들 월급을 높여줄 수 있나요?”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해준 거죠. 오요리를 거쳐간 사람에게 밥집에서 일한 경험과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 중 무엇을 줘야 할지 택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진짜 상권에서 제대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을 했죠.
파인 다이닝 떼레노는 2020년부터 3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됐어요.
미쉐린 가이드 서울 얘길 듣고 제가 먼저 직원들을 불러 우리도 준비해보자고 했어요. 다들 당황했죠. 그렇지만 전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미쉐린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전 미쉐린이 5스타인 줄 알던 사람인데요. 그러나 미쉐린에 선정된다면, 그 자체로 우리의 일의 가치가 보여질 거란 걸 알았어요.
미쉐린 원스타뿐만 아니라 2019년 비콥(B Corp) 인증을 받았고, 2021년, 2022년에는 커뮤니티 부분에서 비콥 인증 기업들 가운데 가장 큰 임팩트를 만들어낸 상위 5%에 선정되었어요.
이익 창출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공익성과 사회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기업만 비콥 인증(우리에게 잘 알려진 친환경기업 파타고니아가 대표적 비콥 인증기업이다-편집자주)을 받을 수 있어요. 항목 심사도 까다롭고 증빙과 리뷰도 준비할 게 정말 많아요. 특히 글로벌 상위 5% 안에 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거기서 저희는 50인 미만 회사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로 5%에 들었어요.
제가 비콥 인증을 준비할 때 주변에서 그랬어요. 한국에서 노동부 인정 사회적기업이면 된 거 아니냐고. 전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런 국제적 기준에서 우리가 상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에 오요리아시아 구성원 모두가 크나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죠. 이런 국제적 인증이 중요한 건, 우리가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해왔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 긴 설명이 필요 없다는 거죠. 비콥 인증 상위 5%, 이 한마디로 충분해요.
미쉐린도, 비콥도 오요리아시아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노력이었군요.
몇 해 전만 해도 사회적기업 관련한 자리에 가면 여전히 인증, 지원금, 일자리 이런 얘기들만 했어요. 전 그런 프레임을 바꾸고 싶었어요. 국제인증을 한 번 준비하려면 공부하고 준비할 게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이런 높은 기준을 통과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오요리아시아는 시작 단계부터 꾸준히 임팩트 투자(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곳에 투자해 보다 지속가능하고 건전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를 받아온 것으로 알아요.
2011년 처음 전 세계 사회적기업의 투자자들과 사회혁신가들의 투자 마켓인 SOCAP(Social Capital Market)에 가본 이후 꾸준히 투자 공부를 하고 임팩트 투자자들도 만났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분들과 얘기할 때 서로 쓰는 언어가 달라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많이 극복한 상태예요. 오요리 때만 해도 비영리단체에 가까운 사회적기업을 했던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겠어요. 솔직히 사회적기업이라는 게 굉장히 모순적인 사업이거든요. 이익은 적고 가치는 많이 드러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를 하라고 해야 해요. 이윤이 되어야 할 돈을 왜 보육원 출신 청소년의 교육비로 써야 하는가에 대해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는 거고요. 그걸 이야기하려면 우리와 일해서 이 사람의 삶이 어떤 차원으로 변했는지 알아야 해요. 100만원 월급 받던 이가 300만원 월급을 받게 되었고, 어떤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수치적인 before-after를 보여주려면, 우리의 비즈니스가 확실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이제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진 것 같은데요.
임팩트 투자자들을 만나면 사회적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되게 달라요. 이제는 우리는 착하니까 도와줘, 이런 류의 얘기는 통하지 않아요. 우리가 멋진 일을 하니까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말해야 하죠. 사회적기업은 매력적이어야 해요. 제가 디자인이나 이런 걸 많이 신경 쓰는 이유가, 우리가 얼마나 더 매력적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일하는 건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회복지, 일자리, 장애인, 보육원… 이런 단어들을 들을 때 떠올리는 전형성이 있잖아요. 그걸 깨야 해요. 그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방식을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하게 하느냐, 그들의 삶의 변화를 얼마나 제대로 그려서 사업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매력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의 임팩트는 그런 거니까요.
2018년 강원도 영월군 석항트레인스테이 위탁 운영을 시작으로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제주 내 식당창업프로젝트 활동도 했는데요. 지역으로 향한 이유가 있을까요?
폐광마을에서 한 번 일해보고 싶었어요. 해외에서도 폐광지대는 지역의 큰 문제여서 많이들 소셜 비즈니스를 하고 있거든요. 석항역에 폐기차를 개조한 숙박시설을 론칭해 운영했고, 3년 동안 제주에서 ‘내 식당 만들기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 5기수, 25명의 청년 창업가들을 키웠고 전국에 이들의 외식업장이 15개나 생겨났어요. 지금은 양주시 상권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요.
지역에서 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지역에서 일하는 건, 처음 네팔에 진출했을 때를 떠올리게 해요. 현지의 언어를 이해하지 않고 나만의 언어를 쓰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 다른 문화권도 아니고, 같은 한국어를 쓰는 데도 말이죠. 현지 주민과의 대화는 늘 도돌이표이고, 때론 갑질도 하시죠(웃음). 그래도 계속 들어야 해요. 솔직히 지역이 가진, 몇십 년에 걸쳐 지역이 부딪혀온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는 여기에 ‘전문가’라고 와 있잖아요. 그러니까 힘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묻고 답해요. 답할 수 없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계속해서 묻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해요. 이런 걸 왜 해요, 왜 이렇게 해요, 사회적기업이 뭔데요. 이런 끊임없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는 태도가 중요하죠.
혹시 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작년 초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에는 사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버티는데 너무 이력이 난 사람이에요. 너무 어려웠던 걸 많이 버텨서 위기가 와도 까짓것 또 빚내서 어떻게든 버티자 이럴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어요. 그때가 우리 사업이 정말 잘되던 때였거든요. 떼레노에 이어 한남동에 오픈한 엘초코 떼레노도 대박이 났고. 드디어 이제는 빚을 갚을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겼는데 코로나 2년차가 되면서 정말 상황이 심각해지는 거예요. 이게 저희만의 문제라면 버텨보겠는데, 요식업 전체가 같이 무너지는 게 보이니까… 근데 이런 상황에서 돈 벌어 월급을 줘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고, 사회적 미션도 해야 해요. 처음으로 멘붕이 왔어요. 그래서 신규 투자 받으려던 것을 포기하고 회사의 미래와 미션을 생각하고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재정비에 들어갔죠. 사실, 그 전까지는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어요.
정말 사회적기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은데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했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면 어떨 때인가요?
좋은 어른을 만나봐야 스스로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딸이 스스로 자기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방학 때마다 제가 존경하고 자랑스러운 업계 분들과 만나게 하고 있는데요. 이런 기회를 딸에게 줄 수 있다는 것, 이게 엄마로서 사회적기업가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점 같아요. 지금 고3인 제 딸이 성장한 시대에는 저희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더 많아질 거란 기대 또한 있고요.
그럼 딸에게도 사회적기업 해보라고 권하고 싶은가요?
계속해서 딸애한테 직장 다니지 말고 사업하라고 꼬시고 있어요. “사업해봐 괜찮아, 망할 거 같으면 엄마가 빨리 빼줄게” 이러면서요(웃음). 기업가라는 것은 돈도 벌지만 책임도 져야 하고 사람도 키워야 하는 큰 도전이에요. 그리고 이런 도전을 감당해본 아이들의 삶은 분명히 다를테고요. 물론 창업을 누구에게나 다 권하는 건 아니에요. 자기만의 브랜딩을 갖고 싶다며 창업을 쉽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청년 창업 프로젝트에서 저희 엑셀러레이팅 실패율이 낮은데요. 그 이유가 될 친구들만 창업하라고 하고, 안 될 거 같은 친구는 끝까지 쫓아가서 말리기 때문이에요(웃음).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정말 해낼 수 있겠다고 각오가 되고 준비가 된 친구들이라면 한번쯤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다 실패도 하고 빚도 질 수 있겠지요. 그래서 책 제목도 이렇게 지었거든요.
정말로 한 번쯤 괜찮을까요, 사회혁신가로 사는 거?(웃음)
안 괜찮죠, 개고생인데…(웃음), 그런데 선배가 되어서 힘드니까 그만둬라 그러는건 쪽팔리잖아요. 그리고 솔직한 말로 진짜 괜찮아요. 왜냐하면 사회적 자본이 많은 게임이기 때문에 실패해도 남는 게 많거든요. 또 이제는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이미 만들어져 있어서 실패해도 선배들이 끌어안고 보듬어주게 판이 만들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사회혁신가. 실패해도 괜찮고요. 저야 너무 빨리 시작했던 게 문제였지만요(웃음).
《한 번쯤 괜찮아, 사회혁신가》사회적기업으로 창업한 지 14년. 아시아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온 오요리아시아 이지혜 대표의 창업 분투기.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 안에서 다양하게 도전하고 성취하고 실패해온 그의 지난 10년의 역사는 그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사회적 경제 동료들과 우리 사회의 역사임을 감동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텍스트CUBE, 14,400원)